본문 바로가기
글자 굵게글자 크게글자 작게인쇄

경북을 빛낸 인물

no image

천만리

원지/사암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중국 영양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천만리 선생은 조선 중기에 명나라에서 귀화한 무신이다. 본관은 중국 영양이고 자는 원지 이며 호는 사암이다. 선생은 서쪽 종북산 천고봉 만인암 밑에 살았다 하여 성을 천씨로 하였다 한다.아버지는 종악이며, 어머니는 병부시랑 전탁의 딸이다. 9세에 외삼촌 전륜에게 의탁되어 공부하였다. 1571년 무과에 급제하여 1575에 총절사가 되어 몽고군을 격퇴하였다. 그 공으로 내직인 내위진무사가 되었으나 남의 참소를 입어 양릉에 귀양살이 하였다. 귀양에 풀려나 태청전수위사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이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는데, 이 때 조병영량사로서 아들 상과 함께 이여송을 따라 조선에 왔다.

평양 전투를 비롯하여 곽산, 동 래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마귀와 함께 울산에서 전공을 세웠다. 왜란이 끝나자 1600년(선조 33년) 8월 만세덕, 이승훈은 귀국하였으나 선생은 따라 가지 않고 조 선에 머물러 살았다. 선조는 그의 전공을 생각하여 선생을 화산군에 봉하고 전 30결을 급복 하였으며 그의 아들 상도 뒤에 한성윤에 승진시켰다. 저서로는 시 44수와 문 2편이 <<사암 천문집>>에 전한다. 고성의 호암사, 청도의 황강사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장이다.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3유형 : 출처표시필요,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담당부서 :
경상북도청
담당자
행복콜센터
연락처 :
1522-0120
최종수정일
2021-04-05
페이지 만족도 및 의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