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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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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동

/백농
활동시기
근대이후
본관
영천
출생시기
1882년(고종 19년)
출생지
가천면 창천동
시대

상세설명

최규동 선생의 호는 백농, 본관은 영천이요, 최무선의 후손 영한의 장남으로 1882년(고종 19년), 가천면 창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엄격한 가정 교육으로 일찌기 한학을 배워 8세에 석류나무를 보고 한시를 짓고 10세에 사서백가를 모두 외었다 하여 신동이라 불리었다. 선생은 서당에서 배우는 것만 가지고는 만족하지 못해서 아침에 글을 배우고는 동리에 있는 한약방에 가서 온종일 한약처방을 배우고도 저녁 때 돌아와 서당 선생 앞에서 아침에 배운 것을 청산유수같이 외어 보이기도 했다.

더우기 당시의 복잡, 미묘한 우리 나라 형편이나 국제정세 아래 15,6세의 소년으로 한학정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선생은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가 광신 상업학교를 졸업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신·구지식을 탐구하기에 부단히 정진한 선생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곧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라의 광복, 민족의 발전은 오직 과학교육에 있다고 생각하여 그 생애의 전반은 나라를 잃지 않으려고 싸웠고, 후반은 나라를 도로 찾으려고 싸웠으니 그 중심 사상도 입교, 구국, 제민의 정신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비문을 참지 못하여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고, 인재를 배양하는 것만이 장차 나라를 다시 찾을 첩경이 된다는 굳은 민족적 신념 밑에 평양의 대성학교를 이룩하여 안창호, 조정환과 함께 교편을 잡고, 오후에나 휴일에 틈만 있으면 측량학교 설립에 정성을 쏟았다. 1909년 휘문, 기호, 융희, 중앙, 오성, 기명 학교 등에서 후세 교육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그의 전공과목인 수학의 강의는 너무나 탁월하여 '최대수'란 이름이 장안에 널리 퍼졌다.

1918년 5월, 중동 학교를 설립, 교장이 되어 민족의 교육기관으로서 민족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민족의 앞날을 걸머질 인재 양성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1919년 2월, 선생은 우리 나라 최초의 중등교육 수학 신교과서를 지어 수리교육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였으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육서심원을 편찬, 간행하는 데에도 물심양면으로 큰 힘을 썼다.

또한 일제의 눈을 피하여 교육시찰이라는 명목으로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세계 언어학자 대회에 우리의 대표로서 정인섭을 보내어 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의 말과 글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자랑함으로써, 독특한 말과 글을 가진 문화민족으로서 부당하게 치욕을 당하고 있음을 호소하는, 하나의 독립운동의 계기로 마련하고자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3·1운동 이후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일으켜 그 취지의 선전과 발기인 모집을 위해서 크게 활동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많은 인사들이 허영과 정치에 대한 야망에 부풀어 교육계를 떠났지만 선생은 꿋꿋하게 교육계를 지켜 나가며 미군정 학무국 자문기관인 한국교육위원회 조직에 일반 교육분야 대표위원으로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공헌했다. 1947년 조선교육연합회가 결성되자 선생은 초대회장으로 선출되고 정기 간행물 '새교육'을 발간하여 전국의 교육자들이 새로운 교육사조의 이해와 폭 넓은 지식의 습득으로 산 교육을 여행할 수 있게 하였다.

1949년 1월 초대 국립 서울대학교 총장에 취임하여 우리 나라 최초, 최대의 국립 종합 대학교로서 이 나라 지도자급의 인재 배출을 위한 영재 교육 전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기반을 닦았으며, 조선 전기공업 중학교를 설립, 과학 기술교육에도 공헌했다. 향교재산위원·국회선거위원·법전편찬위원을 역임, 국정에도 참여하여 건국 사업에 성실을 다하였다. 1950년 6·25 동란 때 북괴에 납치되어 평양감옥에서 1950년 10월 6일에 옥사하니 향년 69세였다.

참고자료 : 국사대사전, 한국근대교육사, 그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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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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