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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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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활동시기
삼국시대

상세설명

겨우 일곱 살로 신라 24대의 왕위에 올랐던 진흥왕도 이제 나이 열 일곱 살이 되었다. 왕태후의 십정도 끝났고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신라의 앞날을 이끌어 가야할 막중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3국을 합해서 하나로 하지않고서는 이땅에 진정한 평화란 기대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라나 신라의 현실은 통일을 실현시키기에는 너무나 힘이 미치지 못함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열 일곱 살의 젊음과 왕위에 있었는지 11년의 경험, 그리고 타고난 영특한 성품은 그로 하여금 작은 왕국속에서 편안한 나날을 보내게 하지는 않했다. 그의 가슴에는 통일을 바라보는 큰 포부가 뭉게구름 일 듯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개국원년(진흥왕12년)부터 진흥왕의 강력한 의지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한강유역 확보를 위한 본격적인 작전이 개시된 것이다. 왕은 거칠부를 총사령관으로 삼고 고구려와의 접경지대인 한강상류의 죽령을 돌파하고 그 일대의 요지를 점령하게 했다. 거칠부는 일찍이 큰 뜻을 품고 중이 되어 고구려에 들어가서 국내를 샅샅이 탐지하고 온 장수였다. 그는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치고는 철령 남쪽의 10군(郡)을 빼앗아 전진기지로 삼는데 성공했다. 이때 백제도 신라의 군사행동에 대응하기 위해 고구려땅에 진군하여 앞서 잃었던 남북한성을 비롯한 6군을 수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라의 목적하는바는 전 한강유역을 확보해서 서해로 나아가는데 있었으므로 진흥왕 14년에는 갑자기 백제가 수복한 남북한성등의 요지를 점령하고 신주(新州)라는 새로운 행정구를 설치하여 김무력을 군주로 임명했다. 이사건은 지난해에 신라가 도살성과 금현성을 점령한후 악화되었던 백제와의 관계를 완전히 파멸시키고 말았다.

동해안을 따라 깊숙히 영토를 개척한 신라는 다음 목표인 가야제국의 정복에 착수했다. 가야국들 중에는 금관가야는 이미 법흥왕때 신라에 병합되었으나 다른 가야국은 낙동강을 끼고 아직도 그 세력을 과시하여 앞서는 백제의 왕과 동맹하여 신라에 대항한 적도 있었다. 낙동강 유역에 이와 같은 적성국이 있다는 것은 신라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사방망라」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신라에 병합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였다. 진흥왕은 낙동강 유역 여러 가야의 완전 병합을 결심하고 23년 9월에 노장 이사부에 명하여 가야를 정벌하게 했다. 먼저 대가야에 진군한 신라는 격전을 예상했으나 화랑 사다함(斯多含)이 거느리는 선봉군의 기습으로 쉽사리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다. 가야 여러나라의 중심이었던 대가야의 멸망은 곧 나머지 가야국들의 멸망도 뜻하는 것이다. 가야국들은 그들의 식민지였던 왜국의 힘까지 끌어들여 신라에 대항했으나 성장하는 신라의 힘에 당하지 못하고 드디어 신라는 낙동강 전유역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진흥왕은 새로 신라의 영토가 된 여러 곳을 직접 순회하며 민정도 살피고, 내 발로 밟아도 보고 싶었다. 이래서 진흥왕은 새로운 영토가 확보될 때마다 친히 그 지방을 돌아보고 기념으로 비를 세웠다. 이것이 유명한 진흥왕의 순수비(巡狩碑)로서 북한산, 창영, 황초령, 마운령의 네곳에 남아있어서 진흥왕의 공을 기리어 후세에 전해줄 뿐 아니라 사료(史料)로서의 가치의 가치도 뛰어나서 3국시대의 금석문으로서 여간 귀중한 것이 아니다.

차가(車駕)를 몰아 멀리 황초령, 마운령까지 이르러 아득한 북역땅을 바라보면서 「사방망라」의 웅지를 다지던 진흥왕이였지만 한편으로는 독실하게 불교를 믿어 황룡사를 비롯한 많은 불사를 짓고 신라 3보(寶)의 하나인 황룡사의 장육존불도 주성하여 불교를 통한 백성의 교화에 국토 확장보다도 더 깊은 정성을 기울였던 것이다. 만년에도 머리를 깎고 법의를 걸치고 법운(法雲)이라는 법명까지 가질 정도로 깊이 불교를 신앙했으며 왕비되는 박씨 사도부인도 비구니가 되어 영흥사에서 일생을 마쳤으니 불교에 대한 신심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진흥왕은 43세의 한창 나이로 파란만장의 생애를 마쳤으나 통일의 역사에 남긴 그의 이름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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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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