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행의 아들로서 호는 독송으로 양친이 돌아가심에 여막을 짓고 무덤을 지키며 매일 밥을 올리고 아침 저녁 다를 올리는데 물길이 멀어 매우 불편하였다. 하루는 호랑이가 묘 가까운 곳에 우물을 파주었다 한다. 그의 효심을 조정에서 알고 베 300필을 상으로 주고 연일, 경원, 의주교수의 벼슬을 내렸다.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