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공은 창녕인(昌寧人) 매계 조위(梅溪曺偉)의 증손으로 1595(선조 28)년 김천 봉계에서 태어났다. 자는 중택(仲澤), 호를 묵재(默齋)라 하였으며 성품이 고결하고 물욕이 없어 높은 학문을 쌓았으면서도 벼슬길에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1636(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국치(國恥)를 당하자, 청나라에 굴복할 수 없다 하여 더욱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조정에서 공의 학덕이 높음을 듣고 교관(敎官)을 제수했으나 청나라의 지배를 받는 조정에는 나갈 수 없다 하여 거절하였으며 수차 벼슬을 내렸으나 끝내 받지 않았다. 세상에선 공의 이 같은 지조를 기리어 숭정처사(崇禎處士)라 일컬었으며 1667(현종 8)년 작고하니 조정에서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증직하였다. 묘소는 장단(長湍) 진동면 동파(津東面東坡)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