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정경(正卿)이고 호는 단구(丹邱)이며 본관은 한양으로 정암 조광조의 문인이다. 중종 때에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보고 벼슬에 나갈 것을 포기한 후 봉성면 와란에 돌아와 학업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는 단구유고(丹邱遺稿)가 있으며 사림의 추앙을 받고 동명원에서 향사하여 왔다.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