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창녕인(昌寧人)으로 호를 파간(巴澗)이라 했다. 효성스럽고 우애가 돈독했으며 경술(經術)이 당대 사림의 추앙을 받을 정도였다. 정조조(正祖朝)에 초선궁경지사(抄選窮經之士)로 경의(經義)를 변록(辨錄:옳고 그름을 밝힘)하여 임금이 그 해박한 학식을 찬상한 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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