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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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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붕형제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한 집안에 네 형제가 학문으로 뿐 아니라 효행이 지극하여 그 부모에게 영광을 드리고 가문을 빛낸 형제들이 있으니 창녕인 조유(曺逾)의 아들들이다. 맏아들 세호는 1674(현종 15)년, 봉산면 봉계에서 태어났다. 자를 병여(炳汝)라 했는데, 효성스럽고도 학문이 깊어 벼슬이 참봉(參奉)에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1759(영조 35)년에 작고하였다.

둘째 세룡(世龍)은 자를 태여(泰汝)라 하고 호(號)를 인재라 했는데, 1676(숙종 2)년에 태어났다. 수암 권상하 밑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상례(喪禮)에 추호도 어긋남이 없는 효자였다. 1735(영조 11)년 공이 작고하자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어 공의 효행을 알게 한 뒤 특별히 지평(持平)을 증직하였다.

셋째 세봉은 1680(숙종 6)년에 태어났는데, 자는 명보, 호는 삼석재(三惜齋)였다. 일찍이 권상하 밑에서 수학했는데 학문이 높았으며 특히 효성과 우애가 두터워 1761(영조 37)년 작고하자 사복시정을 증직하였다.

넷째 세붕은 자를 운거, 호를 경지재(敬知齋)라 했는데 1691(숙종 17)년에 태어났다. 공은 학문과 효성이 특출하였는데, 5살에 아버지를 여의자 철이 들에서 다시 3년 상을 극진히 치렀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을 여묘하며 슬퍼하여 보는 이가 감동했다 한다.

공은 형들과 같이 권상하 밑에서 성리학을 전공하여 1725(영조 1)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뒤에 참봉, 교관, 시직을 제수받았으나 다 나아가지 않고 조용히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760(영조 36)년 작고하여 김천 노옥리 뒤에 안장되었으며 윤봉구 찬의 묘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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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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