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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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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검

자순/수월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1570년(선조 3년)
시대

상세설명

자는 자순(子純)이며 호는 수월(水月)이다. 조광인(趙光仁)선생의 맏아들로서 1570년(宣祖 3年 庚午) 영양면 원당리(元塘里)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 소학(小學)을 읽으면서 옛 성현(聖賢)의 어진 언행(言行)을 마음에 새겨 본받으려 했으므로 성장(成長)할수록 인륜(人倫) 도덕을 지켜 언행이 일치(一致)하였다. 조실부모(早失父母)하여 조모(祖母)밑에 자라 어버이의 자애로운 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서글픔보다도 효도할 길이 없음이 종신(終身)토록 한(恨)스러웠다.

어느 해 엄동(嚴冬) 병석(病席)의 조모 오씨(吳氏)부인이 잉어를 먹기 원하였으나 강(江)과 하천(河川)이 모두 꽁꽁 얼어붙어 물고기를 구할 길이 없었다. 효성이 지극한 손자(孫子)는 강바닥 빙판(氷板)위를 오르내리면서 흐느껴 울며 호소(呼訴)하기를 「아버님이 생존(生存)해 계실 제 효성이 지극하셨으니 혼령(魂靈)이 계실진대 부디 할머님의 병환에 약으로 쓸 잉어를 구하도록 하여 주옵소서」하고 간절히 빌었더니 문득 두꺼운 빙판이 쩡 하고 소리내며 금이 가고 깨어지면서 큰 잉어 한 마리가 싱싱한 비늘을 번뜩이며 펄쩍 뛰어 오르지 않는가. 곧 달려가서 붙잡아 집에 가져가서 정성 드려 고음(膏飮)을 하여 조모께 공궤하니, 기꺼이 감식(甘食)하시고 병이 말끔히 나았다. 이 사실을 아는 이마다 지극한 효성에 신명(神明)이 감응(感應)했음이라고 칭송하였다. 그 때부터 이 동명(洞名)응 비릿골(飛鯉洞)이라 일렀으며 지금도 영양읍 상원 2동에는 비리동천(飛鯉洞天)의 비가 그의 효심(孝心)을 기리고 있다.

선생은 글 잘하는 선비로서 우국지사(憂國之士)였으니 임진왜란에는 아우(沙月 趙任)와 함께 화왕산성 진중에 달려갔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이미 70노령이라 출전할 수 없어 아우(沙月)의 집 뒤 안에 쌓은 제단에 가서 형제 함께 밤마다 나라를 위해 하늘을 우러러 빌며 우국충정(憂國衷情)을 달랠 길 없어 서북(西北 서울쪽)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1648년(戊子)에 별세하니 향년 79세이다.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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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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