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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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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의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한양 조씨 증참판(贈 判) 조량(趙凉)선생의 둘째 아들로서 1543년(中宗 38年 癸卯) 원당리(元塘里)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께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광인(光仁), 광의(光義) 형제의 우애는 소문이 날 정도로 독실하였다. 풍모가 엄정하고 국량이 넓고 학식이 일찌기 깨쳐졌었다. 젊을 적에 음사(蔭仕)로 수의부위(修義副尉)를 지나 분순위(奮順位)와 적순위(迪順位)를 거쳐 1582년(壬午)에 내금위(內禁尉)로 옮기니 옛날 궁내삼처(宮內三處)는 문벌과 재예(才藝)를 봄으로써 피선된 것이다.

1577년(宣祖 10年 丁丑) 청계 김진(靑溪 金璡)과 더불어 영산서당(英山書堂)을 창설할 때에 형제가 함께 참가하였다. 1592년(宣祖 25年 壬辰)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에 군량이 넉넉지 못함을 걱정하여 자진(自進)해서 다량(多量)의 곡물(穀物)을 보급하였다. 1593년(癸巳)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제수(除授)하더니 통정대부에 오르고 장악원판결사(掌樂院判決事)를 제수하였다.

만년(晩年)에는 자택에 약산당(約山堂)이라 현판(懸板)을 붙이고 거처(居處)하여 빈객과 더불어 잔을 들고 시를 읊으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다가 1608년(宣祖 41年) 66세로 별세하였다.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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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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