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동래인(東來人)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의 증손으로 인조조에 생원(生員)이었다. 병자 이후 청나라에 굴복할 수 없다는 절의를 지켜 감문면 구야리에 숨어 청나라 연호를 쓰는 이상은 뜻을 굽힐 수 없다 하여 평생을 벼슬하지 아니하고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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