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1725년(영조1)∼1789년(정조13) 조선 정조 때의 학자. 자는 일경(日敬), 초자는 창백(昌伯), 호는 노우(魯宇). 일찍이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에 통했고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었다. 1747년경 영양 입암에서 최흥벽(崔興壁, 이상정(李象靖)에게 글을 배웠다.
1782년 경주 옥산서원에서 정구(鄭逑)의 태극문변(太極門辨)을 중간할 때 장현광(張顯光)의 발문(跋文)을 부간(附刊)해야 한다고 발의 하자 도내(道內) 식자들이 그의 의견에 찬성하였다. 이 밖에 성명(姓名), 이기(理氣), 도화(圖畵), 천문(天文)지리, 상수(象數), 의약, 복서(卜筮) 등 다방면으로 지식이 풍부했다. 해서와 초서에도 뛰어나 많은 병풍과 액자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