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본관은 오천이고 형양공 습명의 후예이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 나자 영천 의병장 정 대임 장군 진에 나악 당지(唐紙)싸움 박연(朴淵)싸움에서 적을 무수히 무찌르고 7월 27일 영천 복성전에서는 호공할 준비를 하여 의성 감사졸(敢死卒)500명을 거느리고 마현산(馬 山)에 잠복했다가 불어 오는 바람을 이용하여 성중에 불을 지르니 적은 갈바를 모르고 혼란에 빠졌다. 이름을 놓지지 않고 뛰어 들어 적을 무수히 무찍러 혁혁한 공을 세웠고 이어 경산 자인 경주 적을 무찔렀다. 공훈으로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벼슬을 제수 받고 원종훈 3등에 기록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