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본관은 동래, 자는 청원(淸源), 호는 낙빈(洛濱)이며 진사 원충(元忠)의 아들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용양위호군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성풍이 넓고 도타우며 행실이 몹시 삼사고 조심스러웠으며 우애가 깊고 두터워 주위의 많은 칭송이 있었다. 효성 또한 지극한 공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모심에 30여 년을 하루같이 하여 모범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식솔(食率)과 신주(神主)를 모시고 용문산(龍門山)으로 피신하여 난을 피했으며 난중에 조상을 모심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만년에 두 아들에게 이르기를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깊숙한 가슴 속에 어찌 사랑과 미움이 있으랴?... 너희들은 나의 제사를 그칠지언정 조상의 향화(香火)를 끊을 수 없을지니 종가에서 대진(代盡) 할지라도 춘추향사(春秋享祀)는 길이 끊지 말 것이로다..."하였으니 그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 동래정씨 족보, 낙빈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