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한조, 호는 뇌헌, 본관은 청주, 한강 구의 후손, 재설의 아들로 수륜면 수성동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기국이 준정하고 의리가 소명하였으며, 1919년 유림의 파리장서운동에 호응하여 활동함으로써 왜경에게 잡혀 1년간 복역하였다. 출옥 후 성리학에 전신하여 유림의 영수로 추대되었으며 유고가 있다. 무덤은 수륜면 송계동 다락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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