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동래인(東來人) 삼노당(三老堂) 우의 손자이다. 1725년(경종말, 영조초)에 당시 사대신(사대신)이 영조에게 미움을 받아 공적에서 물러나자 그에 대한 부당성과 억울함을 상소하여 좋은 결과가 있었고 1728년 영조무신난에 고령 유명철(兪命哲)이 야로(冶爐)에서 진을 치고 항거할 때 공이 나가서 공로가 크니 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조정에 이사실을 올려 쌀과 옷감을 내리게 했다. 정윤준(鄭潤駿)이 비문을 지었다.
(주) 영조무신난 : 이사건의 발단인바 숙종과 영조사이에 혈연관계가 의심이 난다고 한때 물의가 일어나자 영조가 하루밤 사이에 형인 경종을 축출한데 분개하여 거창 합천등지에서 몇몇 인사들이 서울사람과 연락을 하여 반기를 든 것인데 이참변때 경상도 서중부 일대가 폐허가 되었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