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성로, 호는 성재, 본관은 청주, 한강구의 후손, 세용의 아들로 수륜면 수성동 갓말 출신이다. 용의가 단정하고 절개가 굳어 나이 17·8살에 경서의 깊은 뜻을 알고 출입을 않고 스스로 학문에 잠심하며 행실을 수련하였다. 1919년 유림의 파리장서운동에 연서, 동참하여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고 그 해 돌아갔다. 무덤은 수륜면 양정 뒷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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