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인 충간공(忠簡公) 가후(可候)의 11세손으로 야성현에 태어났다. 세종조 때 이조판서로 좋은 업적을 남겼고 40여년간 사유가 되었다. 대제학(大提學)때 점필제( 畢齊) 김 종직(金宗直)이 선생의 업적에 화운(和韻)한 첫구에 선생기지탐선천(先生機智探先天)이라 했으니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있고도 남는다. 히 역리(易理)에 밝았다. 시호를 문경이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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