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서산인(瑞山人)으로 관작이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이었다. 고려가 망하는 것을 보자 봉작을 받은 유신으로 절의를 지키어 김효신, 백귀선 등과 함께 태조에 따르지 않고 봉계(鳳溪)에 숨어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세상에서 이분들을 김산 삼절(金山三節)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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