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장군의 자는 관여(關與), 호는 단오(端午)로 한말의 선열 정환직 선생의 맏아들로 자양면 검단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기개가 크고 도량이 넓어 의롭지 않는 일에는 그냥 지나치지 알는 의ㅣ협심이 강한 성품이었다. 그러한 성격은 구국의 운동에도 깊이 작용하여 민 영환과 더불어 독립회와 만민회에 참여 하였으며, 혜민원과 보안회, 그리고 국체보상 운동에도 앞장서서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나라는 점점 기우러져 결국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비극을 초래하였고, 장군은 아버지의 명을 받고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와 운주산 안국사에 머물면서 의병을 모집하였다. 심금을 울리는 격문을 보고 각지의 의사들이 속속 몰려 들어 의진을 산남의진 이라 명하였다.
그리고 탄약을 제조하고 군사훈련을 시켜 청하를 공격하고, 신령과 의흥 분파소를 습격하고, 의성, 청송, 죽장 등을 진격하여 일경들을 처부수었다. 그러나 근대 무기로 단련된 일본군을 당해낼수는 없었다. 결국 서울로 진격하여 국권을 회복하려던 당초의 계획은 무산하고 입암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