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공은 영일인(迎日人)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 臣)의 맏이로 1562(명종 16)년 봉계에서 태어났다. 자는 덕보(德輔), 호는 유옹( 翁)이었다. 1601(선조 34)년 진사과에 합격, 1605(선조 38)년 별식 문과(別式文科)에 급제 춘추관 편수관(春秋館 編修官)에 올랐을 때 이이첨(李爾瞻)이 선조의 후사로 광해군을 옹립하고 나설 때, '왕통(王統)은 적손이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영창대군을 추대할 것을 주장하다가 1610(광해군 2)년 해미(海美) 현감으로 밀려 나갔다가 이듬해에는 벼슬을 버리고 귀향해 버렸다. 1613년에는 전적(典籍)으로 소환되었으나 다시 외직으로 나간 바 있고 나중에 다시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에 올랐다. 1639(인조 17)년에 작고하여 봉산면 태평산 선영하에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