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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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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성

중보/천방자,수옹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공은 영일인(迎日人) 병절교위(秉節校尉) 내신의 셋째로 1596년 11월 11일 봉계에서 태어났다. 자는 중보, 호는 천방자(千方子) 또는 수옹(睡翁)이다. 품성이 총명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여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촉망받던 제자였다. 율곡의 아우되는 옥산 이우(玉山 李瑀)의 사위로서 율곡의 학통을 이어 기량을 지닌 공이었다. 공은 특히 율곡의 국방책으로 주장한 십만 양병설(十萬 良兵說)을 지지하는 비변책(備邊策)을 상주(上奏)하였으나 그것이 조정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운을 어찌하랴!"
통탄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정유재란 이후에는 중형 유한(維翰)의 뜻을 좇아 군량미를 마련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헌신한 공로도 크다 하겠다.

세상에서 공을 비변신통 승의랑(備邊神通 承議郞)이라 일컬음도 과장이 아니며 1645(인조 23)년 8월 27일 작고하자 나라에서 통정대부 이조참의(通政大夫 梨棗參議)를 증직하여 국가 사직을 염려한 공에 보답하였다. 묘소는 태평산 선영하에 있으며, 표문(表文)은 윤원거(尹元擧)찬, 석문(碩文)은 김학성(金學性) 찬이다. 특히 부인 이씨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손녀로 시재(詩才)가 뛰어났으나 그 능을 감추어 남은 바가 없으나 <매학정(梅鶴亭)>일편이 전하여 여기 소개한다.

맑고 시원한 강위의 정자
오르자 세상근심 멀어지누나
옥통소는 저녁바람을 희롱하고
빈 계속 달빛만 가득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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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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