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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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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공

/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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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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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공은 해주인 충절공 초의 증손으로 호는 만은, 세조조에 벼슬이 현감에 이르렀으나 어지러운 세태에 벼슬을 버리고 감문면 탄동에 자리잡음으로 향토 학풍의 진작은 물론 영남 신진사류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분이다. 공은 사리에 엄정하고 큰일에 사사로움을 내세우지 않은 선비였다 한다. 경학에 밝아 사림의 존경을 받았으며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향풍을 쇄신하였다. 공의 이 일을, "개령엔 학문하는 이가 적도니, 정공 옮긴 뒤로 풍속이 쇄신하고 학문하는 이가 부쩍 늘었다."고, 매계 조위는 치하한 바 있다.

공은 당대 사림의 존경받은 세 아들-맏이인 현감 송정 철견 차남인 생원 수곡 은견, 삼남인 이조판서 한벽재 석견을 두어 향풍 쇄신은 물론 국가 사직에 보필한 공도 크다. 점필재 김종직·한훤당 김굉필·매계 조위와 같은 당대의 석학들이 공의 집안에 빈번이 왕래하였으며 점필재 같은 분은, "학문과 도의를 논할 사람을, 한 집안에서 만났도다."
고, 기뻐한 사실 하나만 보아도 공의 학문적 높이와 깊이를 짐작할 만하다 하겠으며, 그 인격면의 넓이를 엿볼 수 있다 하겠다.

더구나 맏이인 송정공의 아들에 신당 붕이 나와 청백리요 선정을 베푼 정치가로서 조부의 덕을 계승했는가 하면 차남인 수곡공의 아들에 승지 란(鸞)이 나와 불의 앞에 직언(直言)을 서슴치 않음으로 선비혼을 일깨우고 계승해가기도 했다. 공은 한 마디로 영남 신진 사류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분이며, 향토의 학풍을 진작시켰고 향풍을 쇄신한 선비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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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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