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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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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일

자중/문봉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자중, 호는 문봉, 본관은 동래인데 조선 중종 28년 직제학 정사의 현손으로 봉화읍 탑평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 충정공 권벌이 기묘사화에 말려들어 향리인 봉화읍 유곡리에 은거하고 있을 때여서 이곳에서 충재선생으부터 처음 학문을 배우다가 권벌선생이 은거한지 15년만에 복직이 되어 떠난 후로는 퇴계 이황 선생에게 배웠다. 어릴 때부터 재능이 뛰어났고 퇴계선생으로부터 의심하는 것을 배웠으며 의문나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 퇴계선생 문하에서는 선생을 앞서는 사람이 없었다. 명종 7년 21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명종 13년에 식년문과의 병과에 급제한 후 진보 예안의 현감을 하다 호당으로 뽑혀 마음껏 독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시,문학에 열중하였다.

그후 명종이 죽고 선조의 신임을 받고 이조정랑이 되었다. 이 때에 명종의 상례가 끝나고 신주를 종묘에 두려 하는데 영의정 이준경이 대신들 앞에서 제의하기를 명종의 영혼을 연은전에 모시도록 하자고 하였다. 누구 한사람 감히 반대하지 못할 때 선생이 나서서 곧게 주장하여 전례를 바로 잡았다고 한다. 선조3년에는 춘추관의 편수관이 되어서 명종실록을 편찬하였으며 도승지와 대사간을 거쳐서 이조판서를 역임하다가 선조 9년(1576)에 4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저서는 문봉집이 있으며 백록리사에서 배향되고 있다.

선생은 두뇌가 명석하여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일찍 타계하므로써 빛을 남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영남학파에 남긴 선생의 업적은 매우 크다. 저서로는 한중필록과 관동록, 송조명현록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다.

참고문헌 : 영남인물고, 문봉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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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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