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자 굵게글자 크게글자 작게인쇄

경북을 빛낸 인물

no image

정유례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진양인(晋陽人) 은열공(殷烈公) 관정선생 신열(臣烈)의 후예이며 병절교위 서(序)의 자(子)로 1548년(명종 3년) 생인데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학문이 뛰어나서 조부 월담(月潭) 선생의 사랑을 심히 받았다. 8세에 조부상을 당하고 이어 조모인 정열부인 조씨가 별세하자 연노(年老)한 증조모를 지성으로 섬겨 기쁘게 해드렸다.

남명선생이 와서 보고 기특히 여기고 이끌어주고 가르쳐 주었다. 공부하는 여가에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면서 세상을 건질뜻을 가지더니 임난이 일어나자 부친의 명을 쫓아 3부자와 종형제가 김송암과 곽망우당진에 참가하여 전공을 많이 세웠으며 군공(軍功)으로 벼슬이 제용감정(濟用監正)이 되었으나 천성이 겸손하여 자기 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임난이 평정된 후에는 교궁(校宮)을 재건하고 향안(鄕案)을 창시(創始)하는 등 유문(儒門)의 전의(典儀)에 잠심하였으며 후진들을 가르치는데 힘썼다. 묘는 고령 지산동 황정산에 있으며 화산(花山) 권용현이 비명을 지었다.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3유형 : 출처표시필요,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담당부서 :
경상북도청
담당자
행복콜센터
연락처 :
1522-0120
최종수정일
2021-04-05
페이지 만족도 및 의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