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진양인(晋陽人) 은열공(殷烈公) 관정선생 신열(臣烈)의 후예이며 병절교위 서(序)의 자(子)로 1548년(명종 3년) 생인데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학문이 뛰어나서 조부 월담(月潭) 선생의 사랑을 심히 받았다. 8세에 조부상을 당하고 이어 조모인 정열부인 조씨가 별세하자 연노(年老)한 증조모를 지성으로 섬겨 기쁘게 해드렸다.
남명선생이 와서 보고 기특히 여기고 이끌어주고 가르쳐 주었다. 공부하는 여가에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면서 세상을 건질뜻을 가지더니 임난이 일어나자 부친의 명을 쫓아 3부자와 종형제가 김송암과 곽망우당진에 참가하여 전공을 많이 세웠으며 군공(軍功)으로 벼슬이 제용감정(濟用監正)이 되었으나 천성이 겸손하여 자기 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임난이 평정된 후에는 교궁(校宮)을 재건하고 향안(鄕案)을 창시(創始)하는 등 유문(儒門)의 전의(典儀)에 잠심하였으며 후진들을 가르치는데 힘썼다. 묘는 고령 지산동 황정산에 있으며 화산(花山) 권용현이 비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