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자 복여 호 월봉 관향 영일로 포은 몽주의 후예. 단밀면 주선동서 난 그는 어릴 때부터 효성심이 남달랐으며 열
두살 나던 해에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위독하자 단지주혈로 지성을 다하였고 끝내 아버지가 "내 나이 마흔 넷 한창 모실 때지만 불효막급하여 어머니를 종양치 못하고 앞서 가니 네가 대신 승봉하기 바란다"란 피맺힌 말 남기고 돌아가 그 초종지례를 어른 못쟎이 잘 치뤄 이웃 사람들이 모두 감복했다.
이후 아버지 유명 받들어 조모(아주 신씨)를 정성스레 봉양하는데 30여 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한다. 백수한 할머니 상 당해 승중으로 3년간 여묘 살 적엔 밤마다 호랑이가 와서 신변을 보호하고 있었다 함. 1867년(고종 4년)에 조봉대부 동몽교관으로 증직, 용두산 대로변에 숭효각이 이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