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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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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

맹순
활동시기
고려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본은 초계인이다. 자를 맹순이라 하였다. 1344년(충목왕 원년) 대호군으로서 서연시독관이 되고, 1347년에는 정치도감의 정치관이 되엇다. 1356년(공민왕 5년)에 사공 우복야(사공은 토목 건축을 맡은 고려 때의 중앙부서, 우복야는 정2품의 벼슬), 강릉 교주도 도지휘사를 지내고 판개성부사를 거쳐 밀직제학에 이르고 팔천공에 봉해졌다.

정연은 음률에 정통하였고, 예에 밝아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 정승이었으며 외숙인 채하중이 역모의 혐의로 투옥되자 청주목사로 있었던 그는 공민왕 5년에 경산으로 유배되었다. 채하중이 옥중에서 목매어 자살을 하였으므로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이미 고려의 국운이 기울고 회복될 수 없음을 예견하자 전에 유배지이었던 경산으로 내려와서 상방동 동산 아래에 은거하였다.

그후 누차 중앙에서의 부름을 받았으나 응하지를 않고 일체의 세상사를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인이 그의 집 문밖의 다리를 이엄교(귀를 가린다는 뜻)라고 불렀다 한다.

1358년(공민왕 7년)에 상방동 은거처에서 돌아가셨다. 양헌으로 시호하였다. 양헌공의 사당 동산사가 상방동에서 남천면 협석동으로 이전되어 현존하고있으며, 그 후손이 남천면 협석, 대명과 경산읍 백천 및 옥곡 등지에 살고 있다.

* 정치도감은 고려 충목왕 3년에 전지를 개량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청

참고자료 : 고려사, 고려사 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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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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