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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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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억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화북면 사천동 길 가에 자그마한 정려각이 초라하게 세워져 있지만 이집은 아름답고 놀라운 애기가 담긴 집이다. 사인 오천 정공 억의 려각이다. 정 효자는 지금부터 약 400여 년 선조임금때 효성이 남달라 하늘과 짐승들과 온 고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전해오고 있다. 아버지(경희:慶喜)가 이증병으로 잉어희를 원하기에 울면서 잉어가 잡히기를 비니 얼음 구멍에서 잉어가 뛰어 나왔다. 하루는 이웃집에 불이 나서 불길이 번져 오므로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불효하여 아버지가 병환으로 계시니 어디로 모셔야겠아오이까?"하고 호소하니 갑자기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불어 불이 모두 꺼졌다고함은 하늘이 그의 효성에 감동함이요.

아버지의 똥맛으로 병세를 짐작했다고 한다. 정 효자의 효성의 보람도 없이 아버지는 돌아 가시고 말았다. 이에 장례를 치루자니 때 마침 임진왜란이라 동네 사람들은 모두 피난살이로 떠나 버리고 또한 전염병인 이질이라 돌봐주는 이 없었지만 시체를 고이 묻고 묘소 밑에서 아우 잠(岑)과 움막을 짓고 려막살이를 할 때 짐승도 감동함인지 하룻밤에는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다가 여막 밖에 두고 갔으며 밤마다 와서 지키다가 아침이면 되돌아 갔다고 한다. 이는 짐승들의 감동이요. 또 포악한 왜병들이 닥쳐도 조금도 두려움없이 제사지낸는 모습을 보고는 해치지 않고 물러 갔으며 이 소문을 들은 방어사 권응수 장군도 매월 곡식을 보내어 그를 도와 주었고 이웃사사들도 그를 도와줌은 사람들을 감동시킴이다.

이 소문을 들은 관찰사는 광해 임금께 알리어 "효자의 집"으로 정려토록 했고(1614년) 동생 잠의 현손 효증(哮症)내외 또한 어머니가 등창병으로 의원들은 고치기 어렵다고들했지만 그 고름과 악혈을 입으로 빨아내어 낫도록 하는 등 연이어 효자이 집에서 효자, 효부가 태어난 증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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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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