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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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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인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효자 정수인은 동래 정씨(東來鄭氏)로 증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화엽(華燁)의 아들로 1856(철종 7)년에 태어났다. 공의 처인 김녕 김씨(金寧金氏)는 김시룡(金時龍)의 딸로 1873(고종 10)년에 태어났다. 효부 김씨가 정씨가로 출가해 왔을 때는 홀로된 시아버지와 극도의 가난만 긷리고 있었다.

부부는 합심하여 아버지를 봉양하고 가난을 극복하는데 막일도 꺼리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일흔에 들어선 아버지가 노망기에 들어 인사불성된 지 8년여에 내외가 번갈아 극진히 가호하였으나 마침내 작고하였다. 노고봉산(老姑峰山) 개박골(介博谷) 장지를 정하고 내외가 3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외가 꿇어 앉았던 자리는 움푹 땅이 패일 정도였으며 눈물에 풀잎이 시들었다고 한다. 1928년 효행비를 감천면 무안 2리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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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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