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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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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갑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공의 본관은 서산, 양열공 인경의 후예로서 대덕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생각함이 깊었으며 특히 활쏘기·말달리기를 잘 했다. 마을 앞 숲 속에서 늘 무예를 닦았는데 석대 밑의 바위나 나무를 쏘아 맞히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지금도 그 곳을 사목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공은 무술에 빼어났을 뿐 아니라 경사에도 지식이 깊고 천문지리학도 깊이 연구했다 한다.

그러던 중 1728년 이인좌 정희량 등이 반란을 일으킨 이른 바 무신란이 일어났다. 당시 거창에는 정희량이 고을을 점령하여 진을 치고 인근 고을을 치려고 하면서 그의 부하이며 이인좌의 아우인 웅보로 하여금 우두령을 넘어 지례 김산 쪽으로 넘어오려고 했다. 공은 감연히 일어서 영장 박민웅에게 나아가 "나를 선봉장으로 써 주시오"라고 간청하니 첫눈에 장수감임을 알고 영장은 그로 하여금 금어군 백여 명을 거느리게 하고 선봉장을 삼았다.

군사를 이끌고 우두렁 고개에 진을 치고 허실법의 작전을 써서 군사가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꾸미고, 적진에 전단을 보내어, 만고의 역적을 벗으려면 빨리 투항하라고 하는 한편, 반란군에 가담한 이들에게는 달래는 글을 써 전하고 대진군을 하는 위세를 보이니, 적장 웅보가 그 전술에 속아 후퇴하는 것을 성주 성초역까지 추격하여 관군과 합세하여 적장 웅보와 작은 우두머리 10여명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다. 난이 끝나자 공은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냈다.
"왜 관리길로 나가지 않소?"
하고 물으니, 공은
"할 일을 다 했을 뿐이오." 하며 조금도 뽐내는 빛이 없었다. 뒤늦게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그의 충성을 가상히 여겨 호군의 벼슬을 제수하고 양무공신의 훈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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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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