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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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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습명(鄭襲明)

활동시기
고려시대

상세설명

본관 연일(延日). 향공(鄕貢)으로 문과에 급제, 내시(內侍)에 들어갔고 인종 때 국자사업(國子司業),기거주(起居注),지제고(知制誥)를 역임, 최충(崔沖),김부식(金富軾) 등과 함께 '시폐 10조(時弊十條)'를 올렸으나 거부당했다. 1146년(인종 24) 예부시랑이 되어 태자(太子:毅宗)에게 강서(講書)하고, 공예왕후(恭睿王后)가 둘째 아들 대령후(大寧侯)를 태자로 세우려는 것을 저지, 인종의 신임을 얻어 승선(承宣)에 올랐고 1149년(의종 3) 한림학사에 이어 추밀원주지사(奏知事)를 지냈다. 선왕의 유명을 받들어 의종에게 거침없이 간함으로써 왕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참고 자료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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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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