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장씨 부인은 1598년에 안동 경당 장흥효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경당은 주리논의 전통학파로 이름 높은 분이며 일찍 학봉 서애에게 글을 배웠다. 특히 딸에게도 예절과 글을 가르쳐서 시, 서에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었다. 19살 때 창수면 인량에 살며 학식이 뛰어나고 상처하고 있던 석계 이시명에게 1616년에 계취로 출가하였다. 초취 과안 김씨에게는 1남 1녀가 있었으나 자기가 낳은 자식 같이 잘 보살피며 글을 가르쳤다. 그런 노력으로 상일은 나중에 참봉이 되었다.
자기가 낳은 존제 휘일과 갈암 현일은 학문과 예의에 뛰어났고 영남학파의 중흥을 이뤘다. 갈암은 이조판서를 지내고 경륜에 뛰어났다. 그밖에 아들들도 모두 학행에 이름 높으며 모두 7남 3녀의 어머니로 이와 같이 어진 분이었다. 손자들도 모두 학문이 뛰어났고 그중 밀암 이재는 학덕이 영남에 널리 알려졌으며 영조 4년 무진란에 창의하였고 그의 사위인 대산 이상정은 소퇴계로 불린 분들이며 친외손 등 남녀가 무려 100여 명이 넘었다. 수는 85세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