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자 굵게글자 크게글자 작게인쇄

경북을 빛낸 인물

no image

정동구

처중/구재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1775년(영조 51)
출생지
경산
시대

상세설명

정동구의 자는 처중이고 호는 구재라고 하였다. 1775년(영조 51) 경산시 죽림동(대정동)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순박 선량하였고 34세 때 어머니가 병석에 계시던 3년간을 극진히 병환을 돌보았고 위독할 때는 손가락을 끊어 주혈하였다. 돌아가시자 팔공산에 장사지내고 형 동윤은 집에서 아버지를 봉양하도록 하고 자신은 무덤 옆에서 여막을 지어 3년간 시묘하였다. 또 별도로 단을 모아서 아버지의 만수무강을 빌었다.

호랑이가 여막에 와서도 해치기는 커녕 호위하였다고 한다. 41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마찬가지로 시묘하여 3년을 보냈다. 부모에 대하여 효성을 다했을뿐 아니라 형을 부모와 같이 받들었다. 나라에 국상이 있으면 단을 만들어 멀리 서울을 향하여 망곡을 하였다. 정동구의 효성에 감동하여 경산현령 윤조가 상품을 주어 포상하려 했으나 굳이 사양하였다. 1822년(순조 22년) 68세에 졸하였다. 그 후 철종 때 사림에서 정 효자를 칭찬하여 포상할 것을 추천해 오자, 현령 강희영이 감사 이기연에게 알리고 이기연이 조정에 상계하여 1854년(철종 5년)조봉대부 동몽교관을 추증하였고 이듬해 나라에서 효자의 마을에 정려각을 세웠다.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3유형 : 출처표시필요,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담당부서 :
경상북도청
담당자
행복콜센터
연락처 :
1522-0120
최종수정일
2021-04-05
페이지 만족도 및 의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