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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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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정담은 기성면 사동 사람으로서 자는 징경이다. 선조 8년에 알성무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선조 10년에는 무관으로서 함흥부에 배속되었는데 그 이듬해에 경원, 종성 등지에서 호적 니탕개가 2,0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오니 정담은 "적이 한치의 땅이라도 침범함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인즉 내 마땅히 조국을 위해 한목숨 바쳐 싸우리라"하고 감사에게 지원해서 500명의 군졸을 이끌고 나가 용감히 싸워 적장 니탕개를 사로잡고 800명을 사살해서 크나큰 무공을 세웠다.

선조 23년에는 전라도 김제군수로 임명되어 어진 정사를 베풀어 군민의 칭송을 받았고 청백한 원님으로 이름이 널리 퍼졌다. 2년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일대가 불과 수일만에 수라장이 되어 함락되니 정담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말하기를 "죄 없는 백성이 도둑의 발아래 짓밟히고 있다. 내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태연히 보고만 있을까 보냐?"하면서 동분서주하여 의병을 모았다.

이리하여 모집한 의병을 이끌고 웅령에 나아가 금산을 거쳐 전주를 점령하려고 올라오는 왜군을 맞아 2일간 용감히 싸웠으나 수부족으로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지원부대도 없고 군량미마저 떨어지고 전사자는 시시각각으로 불어나니 보다 못한 정담군수는 웃옷을 벗어 자기성명을 적어 자신이 전사한 후에도 시체를 분별할 수 있게 한뒤에 말위에 올라 앉아 큰 칼 빼어들고 부하들에게 이르기를 "나와 같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사람은 남아 있고, 나라가 망하던 말던 자기 한 목숨 살기만 바라는 자는 곧 물러가라"하니 충의로운 정담군수의 위국충정에 부하장정 300여명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일제히 싸우자는 환호성을 높이 지르며 적진으로 풍화와 같이 돌진하니 육박전이 일어나 최후의 결전 끝에 수부족으로 모두 장렬한 호국의 화신이 되고 말았다.

적장 시마쓰 요시히로도 참으로 감탄하여 "우리도 나라를 위해 싸우지만 조선국에 이러한 충의로운 신하가 있을 줄은 몰랐다"하면서 죽은 정담의 시체를 한없이 굽어보며 그 충절에 경의를 표하면서 부하에게 명령하여 조선국충의담이라는 표목을 써서 세우게 하였다. 정담군수의 웅령싸움이야말로 진정 임란사를 장식하는 빛나는 전투의 하나로서 난후에 우의정 이항복이 여러 장수들의 논공행상을 할 때 웅령대전장병의 공을 제일로 했다하니 그 공을 가히 짐작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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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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