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죽산인 판서 충수(忠秀)의 8세손으로 자는 판언(判彦)이다. 1573년(선조 6년)생, 신체가 건장하고 지략이 뛰어났으며 1621년(광해 13년)에 무과에 올라 훈련원 봉사하였는데 1637년(인조 15년)에는 북쪽에서 변보가 있어 공이 창솔의여북병사(唱率義旅北兵使)로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하였던바 안주(安州)전에서 부윤 이만성(李萬成)과 함께 순절하였다. 호조판서로 증직되였으며 시호(諡 )는 충경공(忠敬公)이며 안주 표충사에서 제향(祭享)하고 있다. 묘는 고령군 운수면 신간동 동산에 있으며 서원(西原) 정종호(鄭宗鎬)가 비문을 짓고 추모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