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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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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필

소여
활동시기
근대이후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고령인으로 우곡면 야정동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여(少旅)인 바 부친 진사기열(進士璣烈)이 구국 운동(救國運動)을 하기 위해 1910년 중국(中國)으로 망명한데 이어 선생 역시 독립운동(獨立運動)을 하기 위해 1912년부터 1934년까지 무려 23년간 일경(日警)의 눈을 피해 나그네 신세를 상징한데가 연유된 호이다. 1912년 선생은 많은 가산을 바쳐가면서 군내(郡內)는 물론 인근 고을의 친지를 찾아다니면서 배일사상(排日思想)으로 굳게 단결하여 거국적인 거사(擧事)의 시기를 기다리게 했다.

1919년 3.1절을 기하여 선생은 미리 준비된 조직망을 통하여 3.1 독립만세에 온 동민(洞民)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으나 미리 눈치챈 일경(日警)들의 삼엄한 경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그해 4월 6일 밥 11시경 선생은 미리 준비 된 태극기를 손에 들고 수십 명의 고향동민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동리를 한바퀴 두른 뒤 냇물을 건너 우곡면사무소 앞까지 와서 만세를 부르며 동민들의 합세(合勢)를 기도하다가 일경의 대거출동으로 강제해산 당하고 선생은 주모자로 검거되어 대구재판소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

이 거사에 이어 그해 4월 8일 역시 도진동 박기로(朴基魯)선생도 부락민 약 30여명을 동원하여 독립만세를 부른바도 있다.(고등경찰요사 7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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