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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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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징

성천/병재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선생의 휘는 하징(河澄)이오 자는 성천(聖千)이며 호는 병재(甁齋)로 충숙공 송은 박익(忠肅公 松은 朴翊)선생의 현손 이며 본관은 밀성(密城)이다. 선생은 1483년(성종 14년) 6월 25일에 출생하였는데 태어나던 날 밤에 무지개가 온 집을 감사고 서기가 가득하였다 한다. 어머님의 태몽(胎夢)에 삼태성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선생은 어릴 때부터 모습이 준수하고 태어난 지 1년만에 바르고 똑똑하게 말을 할 수 있었으며 어머니가 병이 나자 어머니에게 매달리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았으며 젖까지 빨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고을 사람들은 유효(乳孝)라고 하였다 한다. 선생은 타고난 천성이 총명하여 8세 때 이미 소학(小學)을 읽고 해석학 수 있었으며 11세 때는 시에 능숙하여 어른들이 탄복 할 정도였다 한다.

선생은 1562년(명종 17년)에 수직(壽職)으로 형조참판을 제수 받았으며 1566년(명종 21년)에 졸 하니 향년 84이었다. 선생의 학덕과 후진양성의 공으로 가선대부 호조판서(戶曹判書) 겸 외위도총부 도총관(都摠管)의 증직을 받았다. 문집 3권이 있다. 선생이 6년 동안의 시묘를 할 때 삼족당 김대유(三足堂 金大有) 선생이 보내온 시에 말하기를 「무릎을 꿀인 자리는 모두가 파여서 풀이 나지 않 도다. 지성 어린 효성은 봄바람과 더불어 어울리내 아침 저녁에 분향하고 곡을 하니 그 소리 구름을 뚫고 가니 새들고 같이 우는구나」 라고 하였다.

선생의 아들인 박적선생의 자는 화숙(和叔)이고 호는 수모재(守慕齋)로 1507년(중종 2년)에 태어나고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전수하여 학덕이 높았으며 또한 효성이 지극하여 효행으로 천거되어 순능참봉을 제수 하였으나 벼슬을 받지 않았으며 숭덕전 숭현록과 도산문현록에 기록되었으며 1559년 (명종 14년)에 졸 하니 향년 52이었다. 명동서사(明洞書社) 지당에 서있는 위유정(爲有亭)은 선생의 정자이다.

참고문헌 : 도주지, 청도 문헌고, 인명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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