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공의 호는 석보 본관은 밀양으로 대제학 광후의 아들이며 충의백 위의 아우이다. 1388년(우왕 14년) 대마도에 왜구가 침입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재산을 약탈하여 주민이 불안에 떨고 생활이 도탄에 빠져 조정에서 크게 근심하였다.
당시 경상도 도순문사인 형 위와 전함 100여 척을 인솔, 대마도를 쳐서 평정한 공이있어 벼슬이 영의정까지 이르렀고 공양왕으로부터 귀산군으로 봉군되고 귀산현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다. 관직은 대광보국숭록 대부영의정으로 재임하다가 도원수 김종연의 옥사가 일어 이때 관직을 청산하고 귀산현으로 낙향하였다.
1396년(태조 5년)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아들 인해공에게도 안동판관에 추천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공은 향리에서 학문고 풍속을 바로 잡는데 진력 하였으며 뒤에 귀음서원에 향사 하였으나 현재는 충북 원덕사의 밀성대군과 함께 배향하고 있다. 귀산으로 분관됨이 공으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