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본관은 야성이고 일찍이 무과에 오르고 다시 중시(重試)에 급제하였다. 조선조 세조(世祖)때 함길도도사(咸吉道都事)로 많은 업적을 올려 명성이 높았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당하여 그는 도사로서 관군(官軍)을 지휘하여 혈전하는데 일진일퇴하면서 그 진압에 사력을 다하였지만 결국은 반국의 힘을 당하지 못하고 장열한 전사를 하였다. 뒤에 영해 사람들이 그 충의를 기리고자 향현사(鄕賢祀)를 지어 정 담(鄭湛) 장군(將軍)과 함께 배향하였다. 향현사를 혹은 충열사(忠烈祀)라고도 하였으니 그의 충열을 기리고자 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