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자 원백, 호 우천, 성격이 온순하고 어버이한테 효성이 남달랐음.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진사시에 2등한 뒤로 원근 학자들과 성리학 강론과 후진 육성에 전념.
42세때 부병이 위중하자 단지하여 완쾌시킴. 55세땐 자비와 의연금 모아 사창 세우니 그게 유래되어 지금도 태지 마을(가음면 현리동)을 속칭「창마을」이라 불리어진다. 70세때 임진란이 일어나자 장남을 팔공산 의병진에 보내 활약토록 하고 이 뒤 난민 수 백명에게 급식시켜 구휼, 선조말에 정효, 옥천사에 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