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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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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朴在馨)

백옹/진계
활동시기
고려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의저자 진계 박재형 선생(進溪 朴在馨)은 1838년(헌종 4년)에 청도군 금천면 신지동에서 태어나고 초명은 재성(在城)이며 자는 백옹(伯翁)이고 호는 진계(進溪)라 하며 본관은 밀성(密城)이다. 밀성 박씨의 중조(中祖) 태사공 언부(太師公 彦孚)의후이며 7세를 지나 고려말에 충절에 빛난 송은 박익(松隱 朴翊)이며 4세를 지나 문장 도학이 세상에서 유종(儒宗)으로 추중한 소요당 박하담(消遙堂 朴河淡)선생의 증손 박숙(朴琡)은 호를 용암(龍岩)이라 하여 임란 창의 십사의사의 한 분이며 원종삼등공신(原從三等功臣)의 훈공을 받고 벼슬이 군자감 봉사(軍資監 奉事)에 이르니 선생의 10대조이다.

성경당 박정주(誠敬堂 朴廷周)선생의 손자이며 운강 박시묵(雲岡 朴時默)선생의 아들이다. 나이 6세때 비로서 말을 분별하고 보행을 하게되니 모두 기이하게 생각하였느나 지혜가 예민하여 하나를 배우면 열을 추리하는 재지를 가졌었다. 장성함에 따라 아버지 운강공의 명으로 정재 유선생(定齋 柳先生)에게 사사하여 퇴계학(退溪學)을 수학하고 연구하였다. 또 성재(性齋) 허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여 정헌(定軒) 이선생, 진암(進庵)정선생, 긍암(肯庵)이선생, 사미헌 (四未軒) 장선생, 서산(西山) 김선생에게 청학(請學) 하여 원대지학(遠大之學)을 함양익숙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1870년(고종 7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성균관 진사(成均館 進士)이며 1874년(고종 11년)에 아버지 운강공이 병석에 눕자 주야로 정장하여 옷을 벗지아니하고 친히 약을 다려서 간호와 시종을 들었으며 상을 당하자 3년을 하루같이 법도에 따라 예를 다하여 어김없이 정성을 바치니 그 성효(誠孝)에 향중이 감동하였다. 그 후 벼슬길에 뜻을 버리고 식력 양지(食力 養志)의 가학을 이어 백류원(百榴園)을 이루어 저술(著述)에 정진하면서 향리 유생(儒生)들을 초치하여 때때로 강론하고 문풍을 진작 쇄신하여 학문의 깊이를 더하고 문간계(文簡契)를 학충하여 재정을 공여하여 장학지자(奬學之資)를 급여케하고 보화계(保和契)를 설치하여 빈자에게 양미를 급여하며 상장 혼가의 비용을 마련해주기를 수십년하였다. 이와 같이 선지(先志) 선업(先業)을 계승하여 크게 양속을 권장해서 모범이 되었다.

현 금천면 신지동 소재 문화재 선암서원(仙巖書院)은 선생의 힘으로 중창된 것이다. 저서로는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6권 해동속고경중마방(海東續古鏡重磨方)1권 도산지언(陶山至言) 2권, 술선지(述先志)1권 성리류설(性理柳設) 1권 등 20여종 40여권이 있다. 1898년(고종 35년) 의녕원 참봉(懿寧園 參奉)을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1910년 외세침공에 국기가 이미 기울어짐에 의병들에 추대되어 왜병과 전전중 8월 12일 거제군 부인당포(巨濟郡 夫人堂浦)에서 교전중 순절하니 향년 73이였다. 졸후 1925년(일정시) 선생의 유고(遺稿) 일부분이 정리되어 진계문집(進溪文集) 9권이 선생의 손자 청초 박순병(청초 朴淳炳)에 의하여 목각판본으로 간행되고 해동속소학, 해동속고경중마방(海東續小學,海東續古鏡重磨方)이 중간되었다.

참고문헌 : 청도문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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