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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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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도

덕윤/탄옹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선생의 휘는 재도(在燾)이고 자는 덕윤(德潤)이며 호는 탄옹(炭翁) 또는 회포(晦圃)라 하였고 본관은 밀성(密城이며 병재 박하징(甁齋 朴河澄) 선생의 14세손으로 1857년(철종 8년)에 지금의 이서면 수야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천성이 순후하고 부모를 섬기기에 생전에는 물론 돌아가신 후에도 출천지 효성을 다 하였다. 어머니를 모시기에 항상 조석의 구미와 기호를 살피어 식음에 소홀함이 없었다.

하루는 장날에 장에 갔으나 찬꺼리를 구하지못하여 걱정과 근심으로 집에 돌아오는 도중 가난골 개천을 지나오는데 갑자기 큰 물고기가 냇물에서 솟꾸치더니 길바닥에 떨어지지 않은가! 선생은 기뻐 어쩔줄을 모르면서 이 고기를 잡아 바쁘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님의 찬을 장만해서 드렸다. 이와 같은 기적을 보고 고을 사람들은 선생의 지성어린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선생에게 내린 것이라 칭송하였다. 또한 어머니가 병석에 눕게되자 똥맛을 보고 병을 알아내어 간병하였다 한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산소를 구하지 못하고 근심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하루는 잠간 잠이 들었는데 모친이 꿈에 나타나 선생을 인도하여 산소를 들일 지점을 알이켜 주었는데 그 장소는 다른 문중의 서산이라 이 땅을 얻기가 무척 어려운 장소가 되어 백방으로 간청하여 한 물고 10여마지기의 좋은 논과 바꾸어 장지를 정하고 장례를 치루게 되었다. 모친인 의흥 예씨부인은 소시에 홀로되어 시부모 모시는데 고을에서 이름 난 효부였고 자식교육에 부덕을 갖춘 부인이었다.

선생은 3년동안 눈이 오건 비바람이 치건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리길을 성묘를 하니 묘앞에 꿀어 앉은 자리에 풀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선생의 지성어린 효행에 향림에서 포상이 있었고 합방초년에 왜정이 선생의 효행을 전해 듣고 표상할려고 하였으나 선생은 받을 이유가 없다고 이를 거절하고 받지 아니하니 여러사람들이 지극한 애국심이라고 칭찬하였다.

또한 선생은 파조인 9대조 모헌 박동위(慕軒 朴東緯)선생을 위하여 문중사람들과 더불어 상원재(尙遠齋)를 창건하고 후세교육에 몸을 받쳐 항상 충효를 강론하였다 한다. 선생은 지성어린 효행으로 천거되어 화능참봉(和陵參奉)에 제수되고 1937년에 졸하니 향년이 82었다.

참고문헌 : 청도문헌고, 영남루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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