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형제 세 분이 임진, 정유 양란에 걸쳐 제 몸을 초개와 같이 버려, 제 고을을 수호하기 위하여 또 나라를 침범하는 왜적을 무찌르기 위하여 자인에서 궐기하였다. 본은 함양이요, 전참봉 항의 아들 세분. 몽룡, 자는 국원 호는 죽계이고, 둘째분이 몽량인데 자는 국서, 호 죽포이고, 셋째 분이 몽리라 하였는데 자는 국보이고 호는 청담이라 하였다. 침입한 왜적에 의하여 각 고을이 차례로 함락됨을 듣고 구국 일념으로 삼 형제가 마음을 하나로 하여 최문병과 함께 의거에 나섰던 것이다. 자인 고을의 침입로인 이령에 복병진을 치고 나타나는 왜적을 소탕하여 자인고을의 화를 면하게 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홍의장군 곽재우를 따라 3형제가 나란히 화왕성에서 싸우다가 몽량은 순절하였다. 사졸이 상장을 하고 통곡하였다.
몽량이 군공이 의하여 한성좌윤에 증직되고, 훈련원 첨정 몽리는 승사랑에 올랐다. 이들 이름이 곽재우의 동고록에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