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본관은 영해이며 자는 경우(景遇)이고 고려 시중(侍中) 세통(世通)의 후손이다.
영해 황죽리(遠黃洞)에서 태어났으며 일찍부터 예법과 덕의를 익혀 영해향교의 장의(掌議)로서 모든 범절에 뛰어났었다.
임진란을 당하여 그는 향교의 오성위패(五聖位牌)를 보호하기 위하여 난중에 위패를 모시고 서쪽으로 오십 리나 달려가 등운산 깊숙한 계곡 바위에 숨겨놓고 조석전(朝夕奠)을 드리면서 가호(加護)하다가 난 후 다시 원위치로 환안(還安)하니 향중 사람이 모두 그를 칭송하였다. 위패를 숨겨두고 모시던 그 바위를 아직도 향교암이라 하며 그 근처의 개간 위토는 영해향교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