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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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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함

사순/송고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반남
출생시기
1510년(중종 5년)
시대

상세설명

고려때 경사와 역학에 밝고 문장에 능했으며 절의로 뛰어난 문정공 상충과 그 다음 대로 조선 태종 초 좌의정을 지낸 평도공 은의 현손인 박윤함은 1510년(중종 5년) 10월 3일에 안동서 났다.

아버지는 문학과 덕행이 놀라왔던 서다. 자는 사순, 호는 송고, 본관은 반남.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간재 이덕홍, 성헌 백견용과 같이 청량산 아래서 공부하고 우의를 돈독히 하며 지냈다. 일찌기 문예로써 여러번 향시에서 장원하여 예조를 놀라게 했고 성균관에도 그의 학문이 높음을 기록으로 전한다. 그 아우와 더불어 많은 명사들과 교제하며 지냈다. 그는 박학해서 능문으로 만년에 점곡면 동변동으로 옮겨 그 공부가 완선되었다. 벼슬길은 생각없고 초야에 묻혔으나 덕업이 높고 넓어거 후학에 예택을 준 공은 다대하고, 대사헌 유경심도 크게 찬탄하였다.

83세의 고령으로 1592년(선조25년) 국란을 당하자 비분간개 3자 협과 장손 태원을 의령서 의병을 일으켜 천강 홍의장군이라 불리며 거듭 왜적을 무찌른 곽재우 휘하에 보내어 군공을 세우도록 했고, 많은 의병이 어모장군에 이르렀다. 이 같이 학문과 시에 뛰어 나고 불의와는 타협치 않아 자손을 창의 호국케 하여 음사로 벼슬이 어모장군에 이르렀다. 1594년(선조 27년) 갑오 6워 2일에 향년 85세로 돌아갔다.

그의 사후 사림에서 공을 추모하여 동변동(월촌)에 월록서당을 지어 그의 호를 따 송고정이라 이름을 바꾸어 오며 여러 번 개축되었다. 저서로 '회유록'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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