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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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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朴雲)

용암(龍巖)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밀양(密陽)
출생시기
시대
조선시대

상세설명

송당 박영(松堂 朴英)에게 학문과 덕행을 닦아 중종 14년에 진사에 올랐으나 당시 사화가 잦을 때이므로 벼슬길에 나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여 자양심학론, 격몽편, 경행록, 삼후전, 위생방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또한 효행이 특출하여 40년간 어머님을 모심에 있어 능양(能養)과 승지(承志)를 다해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항상 곁에 모시어 손수 시중을 들고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바쳤다.

천수를 다해 어머님마저 돌아가시니 그 애절해 함이 하늘에 사무쳤으며 3년 동안 묘 옆에 떼집을 짓고 나물죽만으로 시묘(侍墓)의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임종 직전까지도 부모님에 대한 은혜를 잊지 못해 조석으로 사당에 참배를 드리며 "부모님의 마음을 위하고 은혜를 항상 잊지 못해 조석으로 사당에 참배를 드리며 "부모님의 마음을 위하고 은혜를 항상 잊지 않은 것이 자식의 도리이며 곧 효도"라고 한 공자의 말씀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학문을 닦고 후생을 교도하던 곳을 명경당(明鏡堂)이라 하며 또한 낙동강변 "용소" 옆에 용수암을 짓고 스스로 호를 용암이라 하여 항상 성현의 가르침을 앞세워 덕으로 이웃을 교화하니 덕망이 날로 높아 갔다. 만년에는 "이회재, 이퇴계, 김진락당(金眞樂堂)과 학문을 서로 강론하였으며 명조 17년(1562)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니 나라에서는 효자 정려를 내려 그의 효행을 길이 표창하였다. 해평면 괴곡리 입구에 세워져 있는 비석 전면의 글씨 "효자 성군진사 박운지여"란 글씨는 이조 선조때 명필 한석봉(韓石峰)의 친필이라고 한다. 인조 24년(1646) 해평 낙봉서원(落峰書院)에 배향하였고 문집(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 교남지, 선산군지, 퇴계 이황 지은 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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