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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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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신

백충/정숙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상주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자는 백충(伯忠),시호는 정숙(貞肅)이며 본관은 상주이다. 사재시판사(司宰時判事),문노(文老)의 아들이다.

정종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태종8년에 사간원 정언이 되었고 다시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당시 대사헌 맹 사성과 함께 묵인해(睦仁海)의 옥사를 다스리게 되었다. 묵인해도 태종의 옛친구로 논공행상에 불만이 있어 태종의 사위인 조대림(趙大臨)을 역모로 고발한 사건이 일어났고 때가 밤이라 이사건을 태종에게 보고하지 아니하고 조대림을 체포하여 심문하였다. 태종이 보고하지 아니하고 죄를 다스렸다. 하여 크게 노하여 맹사성과 박안신을 죽이라고 하였다. 두사람이 형장으로 갈 때 박안신은 기색이 태연하여 조금도 두려운 빛이 없었다.

나졸들에게 기와 조각을 집어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졸들은 듣지 아니했다. "너의가 내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죽은뒤에 반드시 너희에게 먼저 해를 끼치리라." 나졸들에게 눈을 부릅뜨고 꾸짓으면서 목소리와 얼굴빛이 더욱 엄하였다. 그래서 할수 없이 나졸은 기와 조각을 주었다. 내가 직책을 잘못 하였으니 죽음은 달게 받을 것이나 임금이 간하는 신하를 죽였다는 이름을 남길까 봐 두렵구나. 기와 조각에다 이렇게 시를 지어 놓았다. 이렇게 기와장에 쓴 시를 대궐에 보내니 좌의정 성 석린(成石璘)이 병을 무릅쓰고 간하여 태종의 노여움을 풀게하였다. 그리하여 사면되어 죽음을 면하고 귀양가게 되었다.

세종 6년에 왕명으로 일본 사신으로 간 적이 있었다. 배를 타고 오는 길에 해적을 만났다. 그는 상위에 단정히 앉아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고 움직이지 않는 자세로 해적을 향하여 크게 꾸짖고 호령하였다. 그의 위엄에 눌린 해적들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며 물러 갔다. 그의 밝은 사리와 임품이 이러하였다. 뒤에 이조판서로 발탁되어 공정한 인사 처리를 하였으며 1444년에 예문과 대제학을 지냈다.

성미가 곧고 담론을 잘하였으며 생활이 검소하여하였다. 세종 29년 생을 마치니 상주읍 개운리 대방동(大芳洞)에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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