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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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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대대로 내려오며 효성이 지극하여 향토 도의앙양에 크게 본 보기가 된 집안이 있으니 순천 박씨(順天朴氏) 수(璹)의 집안이 바로 그 집안이다. 효자 박수(朴璹)는 뜻과 행실이 순미(純美)하고 경사(經史)에 밝아 후진 양성에 크게 이바지하여 누차 나라에 천거된 바가 있었지만 오로지 선조를 받드는 일에 전심하여 벼슬에 뜻이 없었다. 효자 수의 손자 상태(尙泰)는 문학으로 일찍이 이름이 났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지성으로 부모를 만들었다. 그 어머니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리니 회생하여 향리민(鄕里民)이 다 그 효성에 감탄했다 한다.

효자 상태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다 효성이 지극하여 (世傳之孝:세전지효)로 이름이 났다. 그 중에서도 천로(天老)와 천일(天一)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천일의 효성이 지극하였다. 모친 병환에 꿩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데 기도하며 날로 밖으로 나가 꿩을 잡으려 했는데 하루는 꿩 한 마리가 부엌으로 날아 들어 소원을 풀었다.

또한 아버지가 수년을 병환으로 눕게 되자 약을 드리되 늘 아버지의 대변을 맛보아 그 쓴 맛과 단 맛으로 병세를 진단하고 약을 드리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만년에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송시열의 후예로 대유학자)에게 나아가 예학(禮學)을 닦기도 했다. 고향에 돌아온 후 부항면(釜項面)에다 천류정(川柳亭)을 매고 후진 양성에 힘을 다 하니 그 효성과 교육열은 남의 존경을 받게 되어 관찰사 김세균(金世均)의 천거로 복호(復戶)가 내려지고 죽은 뒤 고종조에는 다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의 벼슬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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