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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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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춘

경로/국담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선생은 조선 인조(仁祖) 때 학자로 휘는 수춘(壽春)이요 자는 경로(景老)이고 호는 국담(菊潭)이며 본관은 밀성(密城)으로 밀직부원군(密直府院君)의 16세손이며 무진재 박신(無盡齋 朴愼) 선생의 아들이다. 선생은 아버지인 무진재 박신 선생의 뜻을 받들어 1597년(선조 30년)에 왜적이 또다시 쳐들어온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의병(義兵)을 일어켜 경남 창녕(昌寧)에 있는 화왕산성(火旺山城)에 들어가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 (忘憂堂 郭再祐) 선생을 도와 고락을 같이하여 활약하였다. 병란이 끝나자 학문에 전념하고 후학들의 교도에 힘을 다하였고 많은 학자들과교유하였다. 선생은 1636년(인조 14년)에 병자호란(丙子胡亂) 이 얼어나자 또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싸울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는데 화의가 성립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산으로 들어가 숨어 스스로 숭정처사(崇幀處士)라 하였다.

또한 선생은 문장에 능하고 성리학(性理學)의 연구가 깊었는데 일찍이 한강 정구(寒岡 鄭逑)선생과 더불어 태극설(太極說)을 토론하고 여헌 장현광(旅軒 長顯光) 등과 성리학(性理學)의 이기지설(理氣之說)을 강론하고 연구하니 선생의 성리학(性理學)은 깊은 경지에 달하였다.선생이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나라를 위해 싸울려던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인조 14년)에 청태종(淸太宗)이 우리나라에 침입하여 일어난 싸움으로 청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쳐들어왔다.압록강을 건는지 10여일만에 벌써 서울 근교에 도착하였다.

이때까지도 조정에서 주전론자와 주화론자가 서로 맞서 의론이 분분하였는데 임금은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피난하였고 강화도(江華島)가 함낙되었고 이어 인조(仁祖)는 항복하여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이 인질로 끌려가고 척화파(斥和派)의 강령론자인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등 삼학사는 잡혀가 처형 당하고 그 후 1639년(인조 17년) 청나라는 우리나라에 강요하여 청태종 송덕비(淸太宗 頌德碑)를 삼전도(三田渡)에 세우게 하였으며 우리나라는 완전히 명의 손을 떠나서 청나라에 복속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왕세자(王世子)와 왕자(王子)를 비롯하여 사대부 집안 사람들과 10수만의 남녀노소가 끌려가 심양(瀋陽)성밖의 노예시장에서 울리는 곡성이 천지를 진동하였고 이 사람들 중에는 관속으로 풀려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 수는 적은 것이었고 사속(私贖)으로 풀려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몸값은 수천량에서 수만량에 달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조선명인전,도주지, 화왕산 동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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