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자 면지 호 명암 관향 함양 성양의 후예로 부모는 계수와 아주 신씨. 그는 모양이 보통사람보다 돋났고 일찍이 외삼촌한테 가서 학문을 익히고 사친에 지극한 효로 임하여 사람들이 "신 효자집 모범을 다시 박씨 가문에서 보겠노라"고들 했다. 1598년(선조 22년)에 정여립 난을 당했을 적엔 종질과 더불어 공 세웠고 서애 유성룡의 천거로 인동부사를 거쳐 파주, 밀양, 상주, 선산 등 여러 고을 살며 청백함을 스스로 가져 벼슬버리고 돌아올 땐 행장에 옹기 약간 뿐이었다 한다.